코로나에 백기 든 자영업 '줄파산'…"재기 막는 '낙인' 지워달라"

입력 2021-05-21 17:39   수정 2021-05-22 01:02


2017년 음식점을 개업한 43세 김모씨는 장사가 잘되자 이듬해 대출을 받아 추가로 점포를 열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급감해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건물주로부터 점포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김씨는 눈물을 머금고 식당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새 직원을 뽑는 식당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김씨는 대출 1억5000만원을 갚을 방법이 없어 올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자영업자’ 쓰러지니 ‘직원’까지…파산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을 비롯한 전국 14개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건수는 올 1~4월 누계기준 1만695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00건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전인 2018년 1~4월 접수 건수는 1만3907건, 2019년엔 1만5124건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업하자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은 것이 개인파산 신청 증가의 주요 배경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최동욱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는 “대표적인 사례로 코로나19 이후 학교 단체 급식 일감이 끊기자 국내 김치 납품업체가 줄줄이 도산했다”며 “해당 업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개인파산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50대 남성 박모씨 역시 일하던 음식점이 문을 닫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올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여러 음식점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었는데 최근 월세 등 생활비 부족으로 여기저기 빚을 졌다”며 “일하던 음식점이 폐업한 뒤 새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파산 신청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일용·임시직의 고용 회복이 더디다 보니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파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줄고 개인파산이 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지난 4월 한 달간 6987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36건 줄어든 수치다. 최 변호사는 “빚의 상당액을 탕감받은 뒤 일정액을 갚아나가는 개인회생이 아니라 파산을 선택해야 될 정도로 수입이 끊긴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파산 낙인 규정 개정하라”

법조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회생법원이 파산을 위한 서류를 간소화한 것도 개인파산 신청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개인파산 신청을 위해 29종의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이로 인해 “파산 신청이 청문회를 받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법원행정처에서 ‘개인파산 및 면책신청사건의 처리에 관한 예규’를 개정해 제출 서류가 14종으로 대폭 간소화됐다. 김주미 회생법원 판사는 “서류 간소화로 인한 영향이 지속적으로 파산 건수에 반영되고 있다”며 “회생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회생보다 파산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파산 당사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인파산에 대한 ‘낙인 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개인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 공무원,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사립학교 교사 등 200여 개 직종에 취업할 수 없다. 입주자대표회의 대표, 아이돌보미, 국비유학생 등도 될 수 없다. 파산 당사자 중에선 “돈이 없어 파산을 신청했지만 사실상 ‘경제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파산부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서류 간소화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 등 ‘모럴 해저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며 “법원 차원에서 채무자의 세금 및 재산 현황을 꼼꼼히 추적하고 필요할 경우 추가서류를 내게 하는 등의 조치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현아/남정민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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